믿음의 현장
선한 사마리아인 <윌리엄 벤턴 스크랜턴> 3
2023년 1월 8일
한국감리교회를 빛낸 해외선교사 12
권순정 목사(목회선교지원실)
스크랜턴의 의료선교
윌리엄 스크랜턴은 1886년 봄, 정동에 별도의 건물을 마련하고 6월 15일 병원을 개원했습니다. 고종 황제로부터 ‘시병원’(施病院)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는데, 인술을 베푼다는 뜻과 스크랜턴의 한국이름 시란돈(施蘭敦)의 ‘시’를 딴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병원은 한국에 설립된 서양 의료기관으로는 제중원 다음으로 두 번째이며 최초의 민간진료기관이었습니다. 정동의 시병원이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내자 버려진 극빈층의 환자를 돕는 계획인 ‘선한 사마리아인병원’의 일환으로 1888년 12월에는 서대문 밖 애오개에도 진료소가 세워졌습니다.
스크랜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남대문시장과 인접한 상동 언덕에 약 2,000평의 땅을 구입하고 한옥을 개조하여 1890년 10월 남대문 시약소를 열었습니다. 가난해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치료를 해주고 치료비는 환자 형편이 되는대로 받았습니다. 신분 사회에서 사람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먼저 스크랜턴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았고, 무당의 굿도 효력이 없다며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들은 서양 의술에 감탄을 했습니다. 스크랜턴을 중심으로 한 미국 북감리교회의 의료선교는 서울 동대문 부인병원(이화의료원)과 평양의 기홀병원, 해주의 구세병원, 원주의 서미감병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시약소에서는 치료와 복음전도가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사는 성경을 이야기해주고 복음서를 팔았습니다. 매일 아침 8시에 입원환자들을 위한 예배가 있었고, 11시에는 의사가 환자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전도사는 환자들을 모아서 성경공부반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스크랜턴의 목회
남대문 시약소에 온 환자들은 병을 치료받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시약소를 떠나지 않고 계속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1893년 시약소 예배처소는 정식으로 상동교회가 되었고, 윌리엄 스크랜턴이 초대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병원이 성공하려면 위치가 중요하며, 특별히 서민들을 위해 남대문 지역에 병원과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상동교회는 훗날 민족운동의 주역이 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애국지사들을 길러내는 민족교회가 되었습니다.
스크랜턴 선교사는 상동교회뿐만 아니라 동대문교회와 아현교회를 개척했으며, 상동교회를 통해서는 궁정교회, 세검정교회, 마포중앙교회, 공덕교회, 청파교회가 개척되었으며, 동대문교회를 통해서는 두모갓교회, 화양교회, 삼청교회, 용두동교회, 청량리교회, 꽃재교회가 개척되었고, 아현교회를 통해서는 북성교회, 모래내교회, 옥성교회, 보물리교회, 영전교회, 제부도교회, 고포교회, 동리교회, 벧엘교회, 예찬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한 선한 사마리아인 스크랜턴으로 인해 이 땅에 얼마나 많은 교회가 세워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