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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삶의 침체에서 생명의 역사로 나아가라

2024년 5월 26일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렘 20:11)

많은 사람들은 질병 중 육체적인 질병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정신적인 절망입니다. 그러기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다. 자기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 질병은 영원한 죽음이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절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절망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습니다. 둘째, 절망은 반복됩니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절망은 전염됩니다. 내가 절망하면 그 부정적인 영향이 다른 사람도 절망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절망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무기력하게 되고 깊은 침체 속에 빠지게 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예언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예레미야는 나가서 전하지만, 그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눈물을 흘렸는지 그의 눈이 눈물로 진물이 들어 앞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이토록 눈물 흘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절망의 마음이 얼마나 컸던지 한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예레미야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절망을 넘어 생명력 넘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인 도전과 교훈을 허락해 줍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며 귀한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예레미야 20:7~13
7.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9.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진실이 왜곡될 때 삶이 침체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예루살렘이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 오히려 조롱합니다(8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향한 비난과 역설, 조롱이 넘쳐나는 상황 가운데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절) 진리가 거짓에 의해 무너지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예레미야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사람들은 듣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악을 넘어서려고 하지만,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아 나 혼자인 것만 같습니다. 이것은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 겪게 되는 현실적인 상황이자 중요한 고민입니다.
신앙 곧 ‘믿음’은 헬라어로 ‘피스티스’(πίστις)입니다. 이 말은 ‘진실에 대한 확신, 믿음, 충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함,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한 아이가 장작을 패는 아버지를 돕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두 팔 안에 장작을 수북이 올려놓고 부엌으로 옮겨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본 동네 어른은 아이에게 묻습니다. “얘야, 너는 작은 체구인데 너무 많이 들고 가는 것 같구나.” 그러자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들 수 있는지 잘 알고 계시거든요.”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진리가 왜곡된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불안감이 엄습할 때 삶이 침체됩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라의 존폐가 다가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지 못하자 예레미야는 불안합니다. 북쪽에는 바벨론이 앗시리아를 정복하여 남하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애굽이 있었습니다.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도 둘로 갈라져 불안했습니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 가운데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외칩니다.

우리의 삶에도 불안의 요소가 많습니다. 개인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등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불안이 엄습할 때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12절)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어 기도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낮과 밤 중 어느 때에 더 멀리 볼 수 있습니까? 밝은 낮에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울수록 눈앞에 있는 것들은 점점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우주에 있는 별들의 빛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잠잠히 바란다는 것은 우리의 눈앞에 익숙한 것들을 부정하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불안이 엄습하고 눈앞에 해결점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오직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한다면,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으로 인한 삶의 침체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랄 때에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생명력 있는 신앙이 삶의 침체를 넘어서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진리가 왜곡되어 불안하고 이로 인하여 사방의 조롱과 비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본문 11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양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환난과 재앙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치유하시며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예레미야 29장 11~13절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는 치유받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왜곡되는 것 같습니까? 거짓이 이기는 것 같습니까?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까? 불안과 염려가 엄습할 때에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을 통하여 삶 속의 침체를 넘어서고, 더 나아가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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