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의 강단
은혜로 주어진 다시 한번의 기회
2024년 9월 29일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눅 13:8)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한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여 삼 년씩이나 와서 보았는데 매년 열매가 없습니다. 보통 무화과나무는 2년부터 열매를 맺습니다. 3년이 지나면 열매가 맺어지고 5~7년 사이의 열매가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무화과나무는 3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무마다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목재를 얻기 위해 기르는 나무가 있는 반면, 어떤 나무는 단순히 땔감용으로 기르고, 어떤 나무는 순전히 열매를 얻기 위해 기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무화과나무의 존재의 목적은 열매를 맺는데 있습니다. 존재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곧 그 존재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목적이 없는 것은 가치 또한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목적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목적이 바로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우리의 삶에 목적이 있으며 또한 우리의 삶을 통해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서 몇 가지로 나누어 영적인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3:6~9
6.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7절의 말씀을 보면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수원의 주인은 3년 동안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3년의 시간 동안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물과 거름을 주고 그리고 가꾸면서 열매가 맺어지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열매가 맺어지지 않으니 과수원의 주인은 나무를 베어버리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인내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냥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랑하지만, 사랑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무한한 사랑이지만,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도 똑같이 무한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죄인에 대하여서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면서 참으십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 죄를 반복적으로 범하는 백성, 집을 나간 탕자 등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지 않고 심판하실 때가 있습니다. 다른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참으심을 만홀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다 봐주실 것이라며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인생, 더 나아가 죄를 죄가 아니라고 정당화시킬 때 하나님은 참지 않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 않으시는 것은 은혜를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은혜 안에 다시 돌아와 그 은혜 안에 거하는 자야 말로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둘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우리 하나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본문의 과수원 지기는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라는 주인의 말에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8절)라고 말합니다. 한 번만 은혜로 기회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과수원 지기는 비록 지난 3년 동안 열매가 없었지만, 다시금 거름을 주고 김을 매주면 분명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재적 가능성, 잠재적 능력을 본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당장의 열매는 없지만, 다시금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도 은혜로 주어진다면 분명히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의 믿음입니다.
가능성을 본다는 것은 곧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는 말씀처럼 가능성의 믿음은 단순히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돌아올 때 그 속에 새로운 열매가 맺어짐의 역사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가능성의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삶에 주신 은혜에 걸맞는 열매가 없거나 부족하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제하여 버리면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삶에 열매가 없게 만들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관계성 속에서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고, 우리 안에 열매의 가능성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 앞에 내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새로운 열매가 맺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은혜로 받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8 ~ 9절을 보면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과수원 지기는 나무에 대하여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종자가 나쁘다’, ‘나무에 문제가 많다’, ‘벌레가 많다’ 등 나무에 대하여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한 번의 기회가 생긴 것은 다름이 아니라 과수원 지기 때문입니다. 과수원 지기가 주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로 인하여 무화과나무의 수명이 연장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은 누구 때문일까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인데,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과수원 지기는 무화과나무와 함께 하겠다고 주인에게 간정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책임지고 수고하겠다고 합니다. 땅을 파고 거름을 주며 그리고 물을 주어 정성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주님으로 향하기만 한다면, 우리 안에 열매를 맺기 위한 새로운 기회가 열립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그것도 은혜로 주어진 기회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매가 없으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받은 은혜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문제를 그대로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깨닫고, 은혜 안에 돌아와 은혜 안에 거하는 자, 예수님은 열매 맺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십니다. 이 사랑 안에 거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