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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너의 조성자가 말씀하느니라

2024년 10월 13일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3)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면 적어도 몇 가지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도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을 때,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창조의 사건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신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것을 믿을 때에 비로소 기독교 신앙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셋째, 구원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하신 뜻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구원은 완전한 자유함,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다른 조건이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기독교만이 가지는 특수성입니다. 넷째, 심판의 사건입니다. 마지막에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심판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의 근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읽은 이사야의 본문은 참으로 깊은 영적인 교훈과 더불어 큰 위로와 소망을 허락하십니다. 본문을 통해 몇 가지로 나누어 영적인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이사야 43:1~7
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너는 내 것이니 두려워 말라

오늘 본문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만큼 확실한 관계 정립은 없습니다. 이 관계는 하나님께서 내 존재, 내 생의 목적, 내 삶의 모든 여정, 내 운명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기에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단순히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불같은 시험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소유한 사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사람은 수많은 시험 가운데서도 조금도 다치거나 상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련들을 통해 더욱 영적으로 성숙하고 더 순결한 사람들로 새롭게 창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려움 끝에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며,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고 능력 있는 삶으로 살게 될 것인가를 기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내가 지명하여 불렀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의 뜻은 개인적, 곧 한 사람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이삭과 야곱,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신 이유는 개인적인 사명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아무런 의미 없이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뜻이 있기에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모리스 와그너(Maurice Wagner)에 의하면 건전한 그리스도인의 자화상을 구성하는데 세 가지의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랑받고 있다는 소속감, 둘째는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는 가치감, 셋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입니다.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지식과 능력, 재물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소속감이 생긴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필요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가치요, 우리의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그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분명히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요,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기에 그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또한 그 은혜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적인 자신감에서 사명감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자 자신감이요, 여기에 우리의 사명감이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 43장 3절은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구원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죄악과 사망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기 위해 값을 치르셨고, 애굽을 속량물로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널 때에 애굽의 군대들이 홍해에 수장당했습니다. 애굽이 망하면서 곧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 곧 구원의 사건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한 댓가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 억압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스와 스바를 주셨다고 합니다.

왜 이와 같은 대가를 치르면서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셨을까요? 그 대답이 오늘 본문 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4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보배롭고 존귀하게 그리고 사랑하기에 희생을 치르면서도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기에 당신의 아들을 속죄물로 주셨다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며 너를 사랑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사랑은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여기실 뿐 아니라 우리를 만나주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매일매일 그 사랑 안에 거함으로 새로운 능력을 소유하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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