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의 강단
날마다 새로움을 누리며 살아가라
2025년 1월 26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 구체적이고도 실증적인 그리스도인의 시간의 개념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에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기록되었듯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의 겉은 낡아져만 갑니다. 건강과 지위도, 그밖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시간이 가지고 있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는 말씀은 우리 안에 생명을 담고 있다는 것, 영속적인 시간의 개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생명이라는 것은 다분히 이중적입니다. 후패해 가는 것과 새로워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쪽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 보다는 다가오는 내일이 더 새로워지는 삶일진대 날마다 새로워지는 인생은 어떠한 인생일까요?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린도후서 4:16~18
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감독회장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속사람이 새로워집니다
본문 16절의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겉사람’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나오는 ‘질그릇’, 10절에 나오는 ‘몸’ 그리고 11절에 나오는 ‘죽을 육체’와 같은 말씀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분히 물질적이고, 제한적이며 현재적인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소멸될 것들입니다.
그와 반대로 바울이 말하는 ‘속사람’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의 영적인 실존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을 말합니다. 겉사람을 옛사람이라 한다면, 속사람은 새로운 사람입니다. 물질적이며 물량적인 것은 점점 낡아지거나 후패해 가지만, 영적이며 미래적인 것은 점점 더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단순히 새로운 존재로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진다고 말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의 영적인 삶 가운데 내 영혼이 새로워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새로워질 뿐만 아니라 낙심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진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옛사람의 모습들, 물질적이고 물량적이며 제한적인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선하신 뜻만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내 삶의 기준이요, 목표요, 더 나아가 삶의 방향입니다. 그렇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둘째, 다가올 영광을 바라보라
본문 17절은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경한 것입니다. 이 환난이 있어야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이든지 고난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아마도 내가 당하는 고난이 가장 아프고 견디기 힘든 고난일 것입니다. 이 고난의 무게는 다른 그 어떤 것의 무게보다 무거워 견디기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귀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고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 더 나아가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간다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본문 말씀처럼 고난은 잠시 받는 경한 것이라 말합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고난을 넘어서고 이 고난으로 인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영광의 중한 것으로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환난의 경한 것이 영광의 중한 것을 창조합니다. 그렇기에 영광과 현재의 고난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돌아볼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요,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것이 아닌 미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부르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집중하고 응답하며 사는 인생, 여기에 우리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달라지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성취되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라
본문 18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말씀합니다. ‘주목한다’라는 말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돌아본다’라는 말로써 헬라어 원어로 ‘스코푼톤’(σκοπουντων)이며 ‘소망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에 도래할 영원한 세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물량적이며 물질적인 세계는 소멸되어 가지만, 새로운 피조물로서 영적인 실존을 가지고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다가올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미래에 우리에게 있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적인 것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와 더불어 사는 삶이 바로 현재적 의미로서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 하나의 하나님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의 여정이 끝난 후의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현재적 의미로서의 하나님 나라와 더불어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미 우리 안에 임한 현재적 의미로서의 하나님 나라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유한한 육체를 입고 환난이 현존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미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누리고 사는 현재적 의미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넘어서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 날로 새로워지는 인생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새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기에, 더 나아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놀라운 사랑이 있기에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멀어져 가는 저세상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지는 복된 인생이 되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