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의 강단
한 알의 밀알 신앙
2025년 4월 13일
“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오늘 본문 말씀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절). 이것은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요, 생활의 철학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 따라 사셨고, 이 말씀 따라 죽으셨고 그리고 이 말씀 따라 부활하셨습니다. 이 짧은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은 영광을 얻기 위해서 앞으로 있어져야 할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지 1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감리교 선교 140주년 기념주일로 한국 감리교회 전체가 선교 140주년을 감사하면서 드리는 기념주일입니다. 140년 전, 하나님께서는 이 땅과 이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파란 눈의 선교사를 보내어 복음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인천의 제물포 항에 도착한 아펜젤러 부부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도착합니다. 이들이 조선 땅에 전한 복음은 절망하고 좌절하였던 이 땅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과 희망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절망과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을 사랑하시어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전하여 주신 것입니다.
본문처럼 예수님께서 고난을 앞두고 하신 오늘 비유의 말씀이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의 신앙을 가지고 이 땅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의 역사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함께 말씀을 나누며 영적인 교훈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2:20~26
20.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감독회장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죽어짐으로 생명이 얻어집니다
오늘 본문 24절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은 죽음을 통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한 알의 작은 밀알, 그 안에는 생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이지만 내부에 준비된 자체만의 생명으로는 생명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거기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온 선교사,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죽였던 사람들입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땅에 왔습니다. 한 사람은 교육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은 의사로서 편안하고 미래가 보장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려고 이 땅에 왔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이 땅에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어두웠던 이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였던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처럼 우리 안에 또 다른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오늘 죽으면 내일은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본문 24절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은 생명의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으면 내일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죽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가다가 억지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선택적 죽으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죽음으로 내일의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십자가의 고난을 지시겠다는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선택적 고난이요, 더 나아가 선택적 죽음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예수님의 선택이 오늘 우리를 새로운 생명의 역사로 인도하셨습니다.
140년 전,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온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는 오로지 복음의 능력 하나만을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믿고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에 내려 기도합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 곳에 왔습니다. 그 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
내가 죽어져야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내 안에 일어나는 욕심과 분노와 시기를 매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의 역사, 기쁨과 감사, 감격의 삶에 새로운 에너지를 덧입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본문 25절에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명’이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지만 이는 같은 단어가 아닙니다. 앞에 나오는 ‘생명’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쉬켄’으로 이는 ‘자연적 생명’을 말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생명’은 ‘영생하도록’의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과 관련된 생명으로 자연적 생명의 한계를 뛰어넘어 죽지 않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말합니다. 다시 25절의 말씀을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자연적 생명을 사랑하는 자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릴 것이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연적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를 뒤어어 조선 땅에 온 선교사 가운데 윌리엄 홀이라는 선교사가 계십니다. 1894년 평양에서 벌어진 청일전쟁 후, 평양에는 많은 부상자들이 있었기에 의사인 윌리엄은 평양에서 부상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하다 전염병에 감염됩니다. 그리고 1894년 11월 34살의 나이로 전염병에 의해 죽고 맙니다. 임종이 가까워진 윌리엄은 아내인 로제타 홀에게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그 희생자가 되기를 피하지 않겠어요. 내가 평양으로 간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나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그 일을 했어요. 하나님이 갚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때로 한 사람의 죽음을 필요로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죽는 순교자의 죽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새로운 선교와 더불어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새로운 생명, 하나님과 하나 되는 참된 생명의 삶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