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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변화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인생

2021년 1월 10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장 1~10절)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는 여리고 지역의 세금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는 신앙적인 고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아닌 것 같은 정체성의 혼란, 죄는 아닌 것 같지만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신앙적인 혼란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고민은 관계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반민족주의자, 매국노라고 비난했습니다. 그 비난을 못 들은 척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은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고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고민으로 갈등하던 삭개오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메시아’로 칭송받는 예수라는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는 여리고에 온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가까이서 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갈등,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삶과 관계의 상처로 인한 외로움의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삭개오를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삭개오와 같은 여러 고민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삭개오처럼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문제와 고민에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십니다. 본문을 통해 함께 몇 가지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누가복음 19장 1~10절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삶을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갔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키가 작았던 그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가기로 선택합니다. 나무 위에 오른 그와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내려오라 하시며 그의 집에서 유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보시고 그의 이름을 친히 불러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기피했습니다. 심지어 거지조차 세리가 주는 돈은 받지 않을 정도로 세리를 멀리했습니다. 세리는 공식적인 죄인이었으며, 세리와 가까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죄인으로 정죄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인인 세리에게 말을 걸어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분위기와 사고를 볼 때,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죄인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시고, 삭개오만을 바라보셨습니다.

가장 큰 사랑이 무엇일까요? 물질을 주는 것, 지식이나 명예를 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의를 주는 사랑이 가장 큰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자신의 의를 주셨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의로운 존재가 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삭개오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을 때, 그의 삶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를 동일하게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에게 변화가 시작되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 마음의 변화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마음 가운데 평안을 얻었습니다. 평안을 얻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첫째, 겸손해집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둘째, 안정감을 느낍니다. 지식과 경험이 안정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지식과 경험으로 인해 더 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진정한 안정감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 정체성이 확실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정체성 가운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넷째, 확신의 사람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소망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다섯째, 절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소유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에 변화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갈취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부를 나눠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변화시켜 주십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우리를 의롭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로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삶도 변화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면 우리의 삶도 자연스럽게 변화됩니다. 중요한 것은 늘 주님과 동행하며 은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함으로 마음의 변화가 삶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완전한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변화된 삭개오를 향해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재산을 팔아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여 마음과 삶이 변화되었고 그로 인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는 이제까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자손 같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같은 민족,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죄인의 집에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그를 더 이상 방치된 죄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으로 인정해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죄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내 성격 가운데는 모난 부분도 있습니다. 죄의 유혹 가운데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와 이름을 불러주시고 만나주십니다. 완전한 구원을 경험하며 매일 새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 찾아오신 예수님, 나를 부르시는 그 음성에 응답하며 변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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