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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2020년 7월 26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한계시록 2장 5절)

본문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에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에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갖기에는 척박한 환경이었습니다.

먼저,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던 지역이라 로마 황제에 대한 숭배가 강요되던 곳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기독교인은 배척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또한, 문란하고 물질적인 이방종교의 풍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에베소인들은 아데미(아르테미스)를 풍요와 번영의 신으로 모시면서 신전에서 풍요와 번영을 비는 음란한 제사를 드렸고, 각종 거래를 행했습니다. 도시생활은 철저하게 아데미와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생활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데미 여신의 축제날에는 동물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을 동물의 밥이 되게 하여 축제의 시작을 알릴 정도로 심한 핍박과 박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으로 인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신앙을 붙잡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에베소 교회를 향해 주님은 “오른손으로 붙잡고 거닌다”(1절)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붙잡고 거닌다’는 말에는 ‘지속성’이 담겨있습니다. 비록 교회가 처한 상황은 어렵지만, 주님께서 계속해서 붙잡고 계시며,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여러 요소들로 인해 신앙생활 하는 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교회에 대한 여러 도전들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도 “붙잡고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위로와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몇 가지를 함께 나누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요한계시록 2장 1~7절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알고 계십니다.

본문 2절에서 주님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고는 원어적으로 볼 때 ‘육체적인 피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릴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당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교회를 향한 박해와 핍박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내라는 것도 단순히 참고 지나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환난과 핍박 가운데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견디어 이겼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피 흘리는 고통을 당할 뿐 아니라 이에 굴하지 않고 견뎌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자들과 거짓 사도들과의 투쟁에서도 진리를 지켜내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이제 이러한 교회를 향해 주님은 “내가 다 안다”고 말씀하시며 위로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어려운 상황들 가운데서도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나의 고통과 어려움, 수고와 인내를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시다는 사실 하나가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위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수고와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다 알고 계시며,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5절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수고와 인내를 마다하지 않았고, 거짓 사도들에 맞서 진리와 교회를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입니다. 헬라어 원문은 정관사를 붙여 ‘그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렸던 그 때, 주님을 진실 되게 사랑했던 그 시절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결핍될 때 어떻게 됩니까? 감사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매일 경험함으로 넘치게 되었던 감사의 찬송과 고백이 사라지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삶이 단지 형식적인 것이 되고, 습관 혹은 고착화가 되어버려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비록 에베소 교회가 주님을 위하여 수고하며, 교회를 위하여 투쟁하고 헌신하여 주님의 위로를 받았지만, 이러한 행위보다도 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것은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만 모든 행동들에 진정한 의미와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감격이 넘쳤던 그 사랑의 때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점검해보십시오. 그리고 오늘도 그 사랑을 놓치지 않기를, 혹시나 잃었다면 회복할 수 있기를 구하십시오. 날마다 우리의 신앙이 ‘처음 사랑’을 유지함으로 생명의 활기가 흘러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돌이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5절은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하며 ‘처음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세 가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원어적으로 볼 때, ‘계속·반복’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어디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졌는지 계속 반복하여 숙고해보는 것입니다. 둘째,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즉,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회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번 만에 딱 돌이켜라 그리고 다시는 뒤돌아서지 말라”(No turning back)는 것입니다. 셋째,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생각과 회개의 열매가 내 삶 속에 즉각적으로 나타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본문은 돌이키지 않는 자와 돌이키는 자에 대한 말씀을 이어갑니다(5, 7절). 만약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주님이 촛대를 옮기신다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붙잡고 함께 하시는 은혜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기는 자,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7절)를 허락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붙들고 함께 하시는 은혜, 나아가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누리며, 주님의 잔치 자리에 참여하여 썩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말씀을 따라 회개의 열매를 맺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유지함으로 끝까지 이기는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삶 가운데 붙드시며 함께 하시는 은혜가 충만하게 넘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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