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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믿음으로 선택하고 결단하라

2020년 7월 12일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본문은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한 ‘룻기’의 말씀입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방 모압 땅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당장 눈앞에 놓인 환경적인 어려움을 피하려고 한 것입니다. 더 좋은 삶을 위해 떠났지만, 곧 불행이 닥쳐옵니다. 엘리멜렉은 죽었고, 모압 땅에서 결혼한 두 아들마저 죽게 되어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 남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된 나오미은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하고 두 며느리를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오르바는 나오미의 말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반면,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내려가기를 선택합니다. 시어머니의 권고에 두 며느리는 각자 다른 결단과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인생은 결단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순간 무엇인가를 결단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나의 인생을 결정할 만큼 중대한 것일 수 있습니다.

룻에게 있어 시어머니를 따르는 것은 아무런 소망도, 어떠한 보장도 없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룻은 굳은 결심으로 나오미를 따르기로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우신 회복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는 물질적인 풍요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룻이 어떤 선택과 결단을 했기에 이토록 큰 축복을 받은 것인지 본문 말씀을 함께 나누며 신앙의 교훈과 도전을 얻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룻기 1장 11~18절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믿음으로 살겠다는 선택과 결단입니다.

흉년을 피해 약속의 땅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 지방으로 간 것을 보면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독립·자주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현실에 잘 적응하며 스스로 살 길을 개척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모압으로 갔을 뿐만 아니라, 그 곳에서 이방 여인들을 며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되어야 하며, 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약속의 땅을 버리고 풍요의 땅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서 경험한 것은 흉년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 그들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나오미는 유대땅으로 돌아올 작정을 하고 두 며느리에게 각자의 길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룻이 나오미를 ‘붙좇았더라’(14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의지적인 혹은 전인적인 결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어머니를 선택하여 따른 것은 인간적인 도리나 윤리적인 것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과 여건을 보고 자신의 방법을 의지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 결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절)라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겠다는 의지적이고 전인적인 결단과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룻이 멸시받고 소망 없던 이방여인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존귀한 자로 세워졌던 것은 그녀에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굳건한 믿음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결단이 있을 때 우리에게도 풍성한 복과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자기 부정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룻의 결단은 자기를 부정하는 결단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룻이 나오미를 따르겠다는 것 자체가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선언입니다. 동서 오르바처럼 새로운 인생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과부와 이방 여인의 신세로 유대 땅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유대 땅에서 분명 곱지 않은 시선, 무시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양식, 익숙하고 즐거웠던 것들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편안한 미래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룻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마저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포기하고 시어머니를 좇아 유대땅으로 온 룻은 하나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룻의 이러한 선택에 복을 더하십니다. 만약 내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신앙은 나의 것을 내려놓는 것이며, 이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이 아닌 크고 넓은 문을 선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3-14).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기에 더 쉬워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것을 택하기를 즐겨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것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참된 길과 문은 좁습니다. 자신의 뜻을 굽히고 예수님의 뜻과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 가운데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룻은 ‘자기 부정’을 통해 이 진리를 경험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나를 부정하고 내려놓는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누릴 줄 믿습니다. 

셋째, 영적으로 깨어 믿음의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 땅은 수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루면서 얻어낸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의 땅’입니다. 이 곳을 버리고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모압 땅에 오랜 시간동안 눌러앉았다는 것은 영적인 눈이 닫혔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해지니 소중한 것이 깨어지고 무너져 내려도 모릅니다. 나오미는 다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삶의 환경과 여건이 어렵다고 해도 지켰어야만 하는 ‘믿음의 자리’, 이제야 그 자리를 떠난 것이 후회로 밀려왔고, 진정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성경은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습니까? 실제로 가나안 땅은 척박한 땅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른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면, 그곳은 황폐한 땅에 불과합니다. 나오미는 이 사실을 모압 땅에서 겪은 인생의 흉년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면 룻은 어떠했습니까? 영적으로 깨어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누리게 된 복이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던 인생이었지만, 새로운 남편 보아스를 만나 메시아의 가문을 잇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선택과 결단을 가지고 매일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 스스로를 비우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신앙의 선택과 결단이 있을 때,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으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 귀한 은혜가 인생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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