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다
기도가 답이다
2020년 9월 13일
내 인생의 말씀
- 채희갑 권사(남선교총연합회 국내본부장)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
1973년 어느 가을날, 공사용 덤프트럭 여러 대가 줄지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대가 “끼~익!” 브레이크 소리를 내면서 급정거를 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트럭 밑에 아이가 깔렸다!”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거 보니 죽은 거 아냐?” 몇 분이 흘렀을까? 트럭 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핸들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던 트럭 기사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트럭 기사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꺼내자 주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소리쳤다. “너 OOO댁 아들 희갑이 아니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난 뒤 병원에 갔다. 진찰 결과 몸 일부 타박상 외에 멀쩡했다.
이 일로 나는 일약 동네 스타(?)가 됐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는 OO김씨 집성촌으로 각종 우상숭배로 무속신앙이 드센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동네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있기는 있나봐? 희갑이가 트럭 밑에 깔렸는데 안 다치고 멀쩡하대!” “나도 더 늦기 전에 예수 믿어야겠어!” 이 일이 있은 후 어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셨다. “희갑아, 너는 지금부터 니가 사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셨으니까 감사하고 기도하며 살아야한다.” 그 뒤로 소년 희갑이는 무시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꼭 하굣길에 책가방을 맨 채로 교회에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항상 들어주셨다.
이랬던 내 신앙생활에 위기가 찾아 왔다. 대학에 진학해서 서울에 올라오니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없어졌다. 한 주 두 주 곶감 빼 먹듯이 빠지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교회를 안 다니기 시작했다. 군 복무 시절에도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직장에 다닐 때도 똑 같았다. 여전히 소속감 없이 교회를 다니다 보니 겉돌았다. 여러 번 인생의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 박 권사를 만났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교제의 첫 번째 조건이었기에 박 권사를 따라 광림교회에 출석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담임목사님의 귀한 말씀으로 양육되고 속회와 선교회를 통해 훌륭한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게 되니 교회에 대한 소속감도 생기고 다시 소년 시절의 신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요즘도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신앙의 위기가 찾아 올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소년 채희갑의 뜨겁고 순수했던 믿음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