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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강단

나를 새롭게 하는 십자가의 능력

2021년 5월 30일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 고린도후서 5장 17절 )

무엇을 삶의 중심으로 삼느냐에 따라 인생의 목표와 과정 그리고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과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무엇보다도 십자가 복음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전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성도들은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연합되었고, 또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통해 새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그토록 십자가 복음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십자가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곳이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곳이며, 우리가 새롭게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단순히 인간의 이성이나 철학적인 접근, 종교적인 교리 등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사건은 바로 체험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때, 그곳에 완전한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예수님을 위해 살고 있지 않다면, 여전히 다른 것이 우리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능력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우리의 삶을 다시금 새롭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17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존재가 새롭게 됩니다.

성경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죽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나도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용한 ‘죽다’라는 표현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된 삶은 죄에 대하여 죽었으며, 죄인의 삶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이라고 인정해주십니다. 두 번째는 생명이 박탈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십자가에서 처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더 깊은 의미에서 이제 생명의 주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자아가 죽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힘을 잃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이 죽어 매일 힘을 잃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죄의 본성과 자아가 죽고, 그 죽음이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의롭다고 인정해주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가십니다. 이를 중생(重生, rebirth)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중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며, 새로운 원칙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인적인 변화로 이끄시며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하십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죽음에서 시작합니다. 죽지 않고는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죽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으로 부활의 축복을 경험하며, 성령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언행이 변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인’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된 사람을 뜻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거듭난 자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말과 행동의 변화 여부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 것은 자아가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말한 대로는 행동하지 못하면서 변명만 늘어놓고,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서는 억울해하지만 다른 사람의 죄는 들춰낼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모여 장황한 말과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옛 사람의 성품입니다.
십자가의 은총을 경험했다면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십자가 위에서 옛 사람은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성품을 따라 살 때는 음행, 주술, 우상숭배, 분쟁, 시기, 질투, 분열, 방탕의 열매를 맺었으나, 이제 성령을 따라 새롭게 된 우리는 사랑, 희락, 화평, 인내, 관용, 신실함, 절제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물론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싸움은 한 순간에 끝나지 않으며, 오히려 십자가의 은총을 경험했다면 영과 육의 싸움은 더 격렬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경험, 지속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 은총을 경험하고, 그 은총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말과 행동을 돌아봅시다. 여전히 죄와 육신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옛 사람을 죽이며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성화의 삶을 살고 있는가.

셋째, 다른 사람을 향한 시각을 변화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를 위해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 있는 사람들은 서로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한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분쟁, 미움, 시기, 질투 등이 생기는 이유는 십자가의 시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어떤 시선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 모두도 서로를 위해 죽기를 바라신 것이며,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을 위해 죽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곧 영원히 사는 길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죽어야 사는 원리’는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날마다 주님 안에서 자아가 죽어지고, 욕심과 정욕이 죽어지며, 특히 다른 사람을 향했던 날카롭고 부정적인 모든 시선들이 제거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을 살리며, 이 땅에서 참된 화목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나를 새롭게 하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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