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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위로 받은 자의 삶”

2022년 7월 31일

“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 고린도후서 1장 5절)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은 치유를 경험했지만, 바울은 자주 아팠고 치유를 위해 드린 기도도 거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복음전도의 과정에서도 배고픔과 목마름, 강도를 만나는 위험, 강이나 바다를 건너다가 죽을 뻔한 위험 등 그가 겪은 고초는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인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잦은 오해와 분쟁, 불신에 휩싸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최고의 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돌기둥 위에서 참수를 당해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비참해 보이는 그의 인생이 결코 저주의 인생으로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크신 위로하심을 경험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공의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친구와 같은 모습으로 고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에게 있어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고통이 넘치는 것만큼 위로도 넘친다고 고백합니다. 고난과 위로를 통해 소망이 더욱 견고해진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위로에 집중하며 기도의 제목을 얻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고린도후서 1장 1~11절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고난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위로는 더욱 강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5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이라고 복음을 전하며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진 순간이 없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의 상황에 이르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포기하고 싶은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며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일어나게 되면, 그 때는 이전보다 더욱 성숙하고 강력한 모습을 소유하게 됩니다.
바울은 고난을 당할 때마다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갔고, 더욱 부드럽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붙들리어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우리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의 양을 채우는 동안 훌륭한 인물로 빚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느냐 당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위로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주시는 위로하심을 통해 더욱 성장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둘째, 우리의 연약함을 새로운 창조의 도구로 삼으십니다.

사람은 저마다 고통을 당하는 부분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의 고통이, 다른 어떤 사람은 관계의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기에 다른 어떠한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바울에게도 이러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심하고, 그의 부족함에 대해 말했습니다. 바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확신이 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며, 나보다 인정받는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기도 합니다. 목적이 같은데도 분쟁하고, 관계가 깨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동역자들이 많았지만,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낙심 가운데 있었을 때, 하나님의 위로가 임했습니다. 새로운 소망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확신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연약함이 있습니까? 그 연약함이 물질이 되었든, 관계나 자존심이 되었든 간에 이러한 가장 연약한 부분 때문에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실패가 아닌 축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모자람은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모자람은 한계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새로운 창조의 도구로 삼으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로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람과 여러 가지 상황으로부터 상처받고 소망을 잃어버렸던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명은 바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로하시고 다시 세운 것처럼, 이제 바울이 다른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로라는 말의 헬라어 뜻을 보면 ‘같이 서 있는 것’을 뜻합니다. 진정한 위로란 같이 있어주는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나눌 수 있는 최대의 위로는 함께 느끼고, 함께 있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과 연약함, 콤플렉스를 주신 이유는 이를 통해 나와 같은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책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고 계신 것처럼, 우리의 상처로 상처받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소외감을 느꼈다면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외롭다면 외로운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게 상처가 있다면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위로자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위로의 모습을 통해 주님을 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만남이 위로의 만남이 되고, 나누는 모든 대화가 위로의 대화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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