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림의 강단
가까이 다가가라
2022년 12월 11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눅 7:14)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 때 사람들이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선은 관 뒤를 따라오며 슬피우는 과부를 향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울고 있는 과부를 주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장 주목하셨던 사람들은 슬픔을 당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통을 당하며 병든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에서 만난 한 과부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당시에 여자가 남편을 잃었다는 것은 앞날에 극심한 시련과 가난, 혹독한 고독이 기다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 가운데 그녀에게는 한 가닥 희망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아들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그녀의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잃는 화를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잃은 슬픔 앞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다가가십니다.
나의 생명처럼 여기던 존재를 잃어버린 슬픔 앞에서 우리들은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많은 슬픔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보다 더 큰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긍휼’은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 돌보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긍휼이 여기는 모습에 대해 함께 살펴보며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긍휼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를 이끌고 나인성을 향해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때마침 장례 행렬이 성문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시선은 관 뒤를 따라오며 슬피 우는 과부에게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고통을 안고 씨름하는 자에게 민감하셨기에 그녀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과부의 처지를 다 알고 계셨기에 과부의 괴로움과 아픔에 자신의 마음을 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의 아픔을 알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슬퍼하는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말라”(13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과부를 위로하셨을 뿐만 아니라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까?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시선을 맞추시길 바랍니다. 서로의 마음이 움직여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예수님의 긍휼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먼저 다가가는 사랑의 마음, 긍휼
예수님이 청년의 관에 손을 대시자 관을 메고 가던 자들이 그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 그러자 죽었던 청년이 관 속에서 일어나 앉습니다. 이 모든 역사는 예수님께서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 또한 우리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르쳐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강도 만난 어떤 사람에게 손을 내민 사마리아 사람을 보면 그는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깁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상처를 싸매고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줍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눅 10:33~34).
두 본문을 보면 “가까이 가서”라는 말이 동일하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 안에 생각나는 그 사람에게 주저하지 말고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셋째, 기쁨의 역사를 일으키는 긍휼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나인성의 과부는 상한 갈대이자 꺼져가는 등불과 같았을 것입니다(사 42:3).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걷고 있는 과부에게 어떠한 소망과 기쁨도 없습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에게 아들은 인생의 전부입니다. 아들이 죽었을 때 과부에게는 인생의 모든 희망과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남은 건 오직 눈물과 고통뿐입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께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눅 7:14~15)
삶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셔서 생명의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긍휼함이 생명의 소생으로 이어지고 절망이 소망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사하심은 한계성을 뛰어넘는 기쁨으로 과부에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를 긍휼히 여길 때 그 안에 기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가운데 또 다른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통해 참된 기쁨을 나누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