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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림의 강단

마음을 소생케 하는 삶

2024년 4월 28일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딤후 1:18)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보편적 사람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 말하기를 좋아한다. 두 번째, 호기심이 많다. 세 번째, 모호한 존재이다.”
진리를 알아가지 않거나 아무런 목표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은 평균적인 사람, 곧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의미가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 비록 큰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처한 곳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훌륭한 인생이며, 가치있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오네시보로”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에베소 교인이며, 바울에 대한 충성으로 칭찬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옥중에 갇혀있을 때 보살펴주고, 눈에 띄지 않게 맡은 자리를 섬겼던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오네시보로는 부자의 관계이자,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자였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축복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언제든지 오네시보로와 함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18절). 바울이 칭찬한 오네시보로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씀을 통해 그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시온 챌린지 아이들 만나길 바라는 예수님 마음 담아

디모데후서 1:15~18
15.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 광림교회 담임목사 김 정 석
    kwanglim-sp@hanmail.net
첫째,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생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생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었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격려해 준다’는 뜻은 ‘활력을 더하여 준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통해 마음의 활력을 얻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지내시며 사탄의 시험을 받으셨지만, 단 한마디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빌라도가 가진 로마의 권력 앞에서도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씀을 전하며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 삭개오, 수가성 여인, 죄책감과 외로움에 싸인 자들에게 찾아가셔서 공감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셨습니다.

기독교를 부정했던 철학자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그였지만, 그는 “내가 예수를 믿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그리스도인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쁨이 없는 그리스도인, 감사가 없는 삶에 대해 실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 있는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듣고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옥에 갇힌 바울을 예수님의 복음으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자신 안에 기쁨이 있으니, 그 기쁨이 전해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인생에는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창조와 풍요로움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진가를 찾아 인정해 주는 사람입니다

오네시보로는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진가를 인정해 주고 바울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의 의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울을 보고 죄인이라 하며 수군거렸지만, 오네시보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오네시보로만은 바울이 주님을 위해 일한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 줄 때에 인정받는 사람은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는 태도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실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하게 하십니다. 간음한 여인의 처지를 이해하셨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대한 니고데모의 고민을 알고 계시며, 위선적인 부자 청년의 정신적 갈등도 받아주셨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 주셨고,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진가를 인정해주는 것은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바울에게 죄인이라 손가락질 했지만, 오네시보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하고 축복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진가를 인정해 줄 때, 거기에 새로운 용기와 다른 사람의 마음이 소생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 행동하는 신앙인입니다

오네시보로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칭찬하면서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고 말합니다. 말로만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 만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사역했던 에베소교회는 로마에서 배로 하룻길을 건너야 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운 시대였는데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찾아와 바울을 격려했습니다. 에베소교회가 있던 지역은 활발하게 무역이 이루어졌던 곳으로 향락과 퇴폐가 난무했기 때문에 바울이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교회였습니다. 그곳은 교인들 간에 다툼의 문제가 많았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의 뒤를 이어 에베소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이 자라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네시보로는 바울의 거룩한 희생에 동참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에서 봉사하며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염려해줄 뿐 아니라 신뢰를 주었던 사람이기에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통해 용기를 얻었습니다.
바울이 캄캄한 로마의 옥중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네시보로처럼 행동하는 신앙인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생케 하고, 그의 진가를 인정해주며, 행동하는 신앙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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