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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클레이 선교사

한국감리교회를 빛낸 해외선교사 2

조선에 선교의 개척자, 로버트 새뮤엘 매클레이

로버트 새뮤엘 매클레이(Robert Samuel Maclay)는 1824년 2월 7일 미국 펜실베니아의 신실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감리교학교 디킨슨 대학(Dickinson College)을 졸업하고 게티즈버그에서 첫 목회를 시작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사 파송 제의를 받고 23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선교사로 임명 되었습니다.
중국의 개방과 함께 갑작스럽게 파송을 받은 매클레이 선교사는 홍콩으로 가는 선상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았고, 선상에서의 뜨거운 성령체험을 통해 열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10년간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일본이 개방되면서 미국 감리교회 본부로부터 일본으로 파송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하는 동안 네 아이들을 잃었고, 주일 예배 중 오르간을 연주하다가 쓰러진 아내 마저 끝내 눈을 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아오야마(靑山) 학원을 설립하고 연회를 조직하는 등 일본 선교에 혼 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고, 당시 김옥균이 나 이수정(성서를 한글로 처음 번역한 사람)이 일본에 방문하며 매클레이 선교사를 만나 기도 했습니다. 매클레이 선교사는 일본에서 조선 상황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매클레이 선교사가 직접적으로 조선 선교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은, 가우처 박사의 지원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보빙사절단으로 파견 된 조선인들을 만난 가우처 박사는 미국 감 리교회 해외선교국에 조선 선교비를 후원하며 일본에 있는 선교사들이 은둔의 나라 ‘조선’을 살펴볼 수 있도록 지원한 것입니다.
이에 매클레이 선교사는 조선을 방문하게 되었고, 공개적으로 서울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가 되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매클레이 선교사는 김옥균의 도움으로 고종 황제로부터 학교와 병원 설립을 윤허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선교사가 조선 선교사로 파송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매클레이 선교사가 조선 땅에 머문 시간은 2주 정도였지만, 그는 선교의 기반을 미리 닦아놓고 일본에서 조선 선교를 간접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40년간, 동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위해 헌신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교에서 새로운 사역을 펼치다가 은퇴한 후, 1907년 8월 18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생을 마감하고 로스앤젤레스 로즈데일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은둔의 나라 조선은 물론, 아시아의 근대화 와 복음화를 위해 사명을 다 이루고 잠든 것 입니다.

해외선교사 로버트 새뮤엘 매클레이(Robert Samuel Maclay)